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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제품 리뷰

그 많던 캠코더는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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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오랜만이다 '캠코더'

 

요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다. 바로 캠코더이다. 카메라가 정지된 사진을 촬영하는 디바이스라고 한다면, 캠코더는 움직이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디바이스 이다. 역시나 스마트폰 대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 스마트폰 안에서 동영상 촬영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나 취미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 조차 캠코더라는 제품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카메라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동영상까지 담아내는 등 캠코더는 경쟁력을 잃고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한 비운의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오래된 유물을 꺼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이것이 바로 캠코더 이다.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다.

 

일본 제품속의 국산 캠코더

 

캠코더의 어원은 카메라의 CAM과 레코더의 CORDER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디지털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이러한 화상이미지를 기록하기 위해서 매체가 필요했는데, 카메라에서 사용되는 것이 필름이었다면 캠코더에서는 비디오테이프가 사용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디오테이프는 주로 영화 감상용으로 이미 기록되어 있는 매체일 것이다. 하지만 캠코더는 빈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하는 제품으로 이 비디오테이프의 규격에 따라 캠코더의 규격을 구분했다. 특히 가정용 캠코더라고 불리던 제품군은 휴대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보던 커다란 크기의 테이프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 크기의 테이프는 결혼식 등 행사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기는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캠코더는 8mm 테이프를 사용하는 캠코더로써 8mm 캠코더라고 불렀던 제품군이다. 필름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캠코더 시장에서도 일본 제품이 세계적으로 점유율이 높던 시절이었다. 소니나 JVC와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었다. 이 와중에 국산 브랜드인 삼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름하여 마이캠이다. 당시 삼성의 휴대용 기기 제품군에 마이라는 접두어를 많이 사용했었는데,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한 일명 워크맨의 이름도 마이마이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국산 브랜드로 출시되었던 마이캠은 어떤 제품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금의 메모리 카드와 같은 역할로 8mm 테이프가 사용되었다.

 

촬영과 재생 둘 다 가능한 디바이스

 

캠코더의 기본은 촬영이다. 하지만 현상과 인화를 거쳐서 사진이라는 결과물로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와는 다르게 캠코더의 비디오 테이프는 이를 재생할 수 잇는 별도의 플레이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가정에 비디오 플레이어의 보급률이 높은 상황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VHS 규격의 커다란 비디오 테이프 재생을 위함이었다. 8mm 테이프는 촬영용으로만 주로 사용될 뿐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별도의 미디어로써 유통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도 그럴것이 VHS 테이프와 가격 자체가 상대가 안되었다. 크기와 무게에서 이점은 있었지만 비디오 테이프는 영상을 기록하는 필름을 감은 형태로 60분 90분, 120분과 같은 형태의 용량으로 구분하였다. 이에 많은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테이프를 많이 감기위한 공간이 필요하였고, 이에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8mm 테이프는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렇게 드문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마이캠과 같은 캠코더들은 자체 플레이어를 내장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웟던 것은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와 같이 자체 LCD 모니터가 달려있어서 촬영 뿐만 아니라 재생시에도 모니터링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LCD를 돌려서 정면을 바라보게 한 모습.

뿐만 아니라 이 LCD는 180도 회전이 가능해서 스스로 촬영하면서 모니터링 용도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물론 이 커다란 디바이스를 한 손으로 들고 지금의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듯 촬영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삼각대 위에 설치하고 촬영하는 경우로 박신양 주연의 영화 '편지'를 보면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너무 클래식일까? 어쨌거나 이 만능 LCD는 평소에는 접어두고 촬영시에 뷰파인더를 활용하지 않고 LCD를 보면서 촬영도 가능했으니 이 시대에 앞선 시도였다고할 수 있다. 이외에도 NTSC 규격을 따르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이 NTSC와 PAL 규격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우리나라에 판매되었던 대부분의 영상, 방송용 장비들은 NTSC 규격으로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설명했던 모든 것들이 이 제품의 모델명으로 남아있는데, 풀네임은 삼성 마이캠8 SCL-300 NTSC 모델인 것이다.

캠코더 상단의 조작부 모습. 설정을 통해 카메라와 플레이어 선택이 가능했고, 이에 따라 버튼들도 기능을 달리했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다양한 기능들

 

캠코더, 특히 가정용 캠코더는 아마추어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쉽게 전문가처럼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능의 탑재가 중요했다. 가장 주요했던 것은 바로 줌 기능이다. 제품에 큼지막하게 320x라고 표시를 해 두었는데, 이 한계치는 디지털줌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디지털줌이란 광학줌과 다르게 확대를 하면 이미지가 깨져보일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손떨림 방지기술이 없었기 떄문에 상당한 흔들림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배율이 높은지는 당시 캠코더 스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였다. 이외에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화면을 페이드인/아웃 시키거나 초점거리르 조정하는 등의 기능도 버튼 하나로 설정이 가능했다. 지금의 전문 편집툴과 같은 세련된 효과는 아니지만 당시에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은 캠코더의 역할이기도 했다.

LCD 안쪽에는 다양한 편집기능을 지원하는 버튼들이 위치해 있다.

뷰파인더도 화면의 지연을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훌륭했으며, 뷰파인더의 주변부에 위치한 링을 돌림으로써 사용자의 시력에 맞는 초점조절이 가능했던 것도 세심한 기능중에 하나였다. 또한 캠코더 파지를 위한 밴드는 그립감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였는데, 당시 고가의 장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장시간 손에 들고 있어야 했기에 편안하고, 자극이 없게끔 그립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물론 카메라와 같이 넥트트랩도 존재했지만 이를 착용하고 다녔던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카메라나 캠코더는 모두 오른손 조작에 맞춰서 제작되었다.

 

그래도 아쉬웠던 기능들

 

지금 디지털 기록장치와 비교해 보면 참 불편했던 디바이스였다. 아날로그 테이프가 가장 비교되는 부분이다. 디지털은 내가 원하는 부분을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바로 넘길 수 있지만, 아날로그의 경우 이를 위해 테이프를 감아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예를들어 앞에 촬영한 부분을 보고 싶거나 다시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끝점에 와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여지없이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프 감기가 시작된다.

또한 저장장치인 테이프의 보관도 골칫거리중의 하나였다. 테이프 하나하나의 크기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가지고 다니는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테이프들이 촬영용 원본을 기록한 매체임을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상당히 많은양의 테이프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군다나 디지털 미디어에서 처럼 하나의 저장장치를 계속 이어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예를들어 우리아이 생일잔치를 촬영한 테이프가 있다면 그 뒤에 아버지 칠순잔치를 연결해서 촬영하는 것이 아닌 별도의 테이프를 마련하여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테이프에 기록할 수 있는 용량을 꽉 채우지 못한 테이프들이 더 많았으며, 반대로 테이프의 기록 시간이 모자라서 한 개의 테이프로 끝나지 않고 여러개의 테이프가 필요했던 경우도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된 하나의 영상이 아닌 원본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많은 테이프들이 필요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크기가 대단히 큰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 매체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없다는 것과 비교하면 단점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배터리이다. 휴대용 기기인 만큼 배터리의 지속시간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의 배터리 기술은 많이 부족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배터리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는데 당시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필자도 두 가지 크기의 배터리를 사용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배터리가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소니의 캠코더인 핸디캠과 호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좌측의 대용량 배터리는 소니의 핸디캠 배터리로 삼성 마이캠과 호환이 되는 규격이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배터리 충전기에 리프레시 버튼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버튼을 누르면 배터리를 완전 방전한 후 충전하게 되어있는데, 아마도 당시 니켈-카드뮴 전지의 특성상 완충과 수명을 위한 조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터리 사용은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외부 LCD를 사용하거나 뷰파인더의 경우도 전자식으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클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다못해 테이프를 감는데도 전력을 사용하니 말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배터리 부분을 빼내면 콘센트를 꼽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야외에 들고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실내촬영을 위해서 마련한 장치로 전원을 꼽고 촬영을 시작하면 배터리 방전의 우려없이 안심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

충전기에 달린 녹색버튼이 리프레시 버튼으로 누르고 충전하면 시간이 정말 오래걸린다.

 

잠자고 있을 캠코더와 8mm 테이프

 

당시 캠코더 광고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주로 타겟은 아이를 둔 아빠들이었다. 아이의 모습을 담거나 집안의 경사를 촬영하는 목적으로 많이 쓰일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누구나 영상 촬영장비를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했던 시기였다. 필자가 이 제품을 구입한 것이 세기말 1999년 이었으니 딱 20년이 흐른 시간이다. 아쉽게도(?) 당시 아이 아빠도 아니었고 단지 영상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그렇게 의미있는 영상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주 소비층인 아빠들은 어떨까? 그 당시 영상에 찍혔던 꼬마들은 지금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8mm 테이프를 찾게 된다면 그때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타임머신과 같은 장치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토록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촬영했던 것들의 결과물이 이제야 빛을 발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대라면 아버지에게 당시의 내 모습을, 당시 아버지 였다면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8mm 테이프를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8mm 테이프만 찾으면 안된다. 꼭 캠코더도 같이 찾아야 영상을 재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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